(출처 : www.taketwoproductions.org)
제 어머니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벤허'를 엄청 좋아하십니다. 요즈음에는 명절, 크리스마스에는 신작 영화를 편성하기에 바쁘지만 제가 자라날 땐 항상 저 두 영화는 편성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진정한 명작은 여러 번 봐야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예능 프로를 보고자 열망하는 아들을 무시하신 채, 평소 잘 착용하지 않으시는 잠자리 안경과 커피 한잔을 준비하시고 TV앞에 앉으셨습니다.
어렸을 때는 왜 본걸 또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게도 한명옥 여사님의 '벤허'같은 작품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80년생들의 필독서라는 '먼 나라 이웃 나라'도 그 중 하나일 겁니다. 왠지 프랑스에서 초대를 받으면 와인을 사가야 하고, 대학교는 공짜이며 음식을 먹을 때 Très bien을 외쳐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정서를 가진건, 한번 본다고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지요. '러브액츄얼리'는 말할 것도 없지요. DVD리핑을 해놔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DVD가 에러났겠지요. '어느 멋진 순간'도 참 많이 봤던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렌트'는 제게는 참 각별한 작품입니다. 영화가 개봉할 때쯤, 한국에서 라이선스버전을 공연한다기에, 영화를 보는 것보다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뮤지컬을 보고 싶어서 예매 후 고고! 렌트의 매력에 퍽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장 영화도 보고, CD사서 OST도 듣고 그랬지요. 그리고 얼마 전. 렌트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팅이 서울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며칠을 고민하다 표를 예매했습니다.
그럼에도 접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는 건, 작품이 몰래몰래 변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작품을 즐기는 제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이겠지요. 이번에는 나의 어떤 모습과 작품이 만난 것일까요.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렌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다 아픈, 아니 엄밀히 말하면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에 상처 입은, 자신이 거주할 권리가 있는 땅으로부터 거절당한, 그리고 조금씩 자신을 죽여 가는 불치병인 AIDS에 걸린. 그럼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사랑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시작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겠지요. 신경림의 시에서 말하듯 가난으로 인해 무언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두려움의 장벽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결단한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미미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그러한 것을 상징하는 것일 것입니다.
나에게도 그러한 두려움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말로는 창창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재능과 기회가 주어질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 1서 4:18, 새번역)
이젠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어떠한 일이 닥쳐와도 도망치지 않고 겪으렵니다.
두려움을 내어 쫓는 완전한 사랑 안에서요.
2009-09-17 18:01:07에 싸이월드 블로그에 작성된 글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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