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Die Losungen

성령강림절을 마치며.

Belighty 2012. 9. 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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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나는 박사가 되었다. 한국 나이로도 20대다. 어찌보면 성공이다.
다른 사람들도 축하해줬다. 근데 무언가 속이 답답했다.
성령강림주간이 끝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내심 바랬다.
정말로 그 주간의 마지막 날, 우연히 갔던 결혼식에서 한 방 크게 얻어 맞게 되었다.


"나xx이가 그러던데,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한다고 그랬다며, 정말 대단하다."


나는 '사람이 말을 던지면 반드시 그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는 진리를 믿는데
신실한 척을 하고 다닐 때, 아니 정말로 내게 그 말들이 의미가 있던 그 옛날 그 시점에
떠들고 다니던 말을 학부 동기가 기억을 하고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했나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별 생각 없었지만, 저녁 밥을 먹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그 이야기가 나를 다시 만졌다.
그리고 떠올랐던 한 사람, 기드온.


11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땅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 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 
12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장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기드온이 그에게 되물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을 겪습니까?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어 우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말하였는데, 그 모든 기적들이 다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기까지 하셔서,
     우리가 미디안 사람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14  그러자 주님께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15  기드온이 주님께 아뢰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16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니, 네가 미디안 사람들을 마치 한 사람을 쳐부수듯
     쳐부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사기 6:11-16, 새번역)


기드온은 정말로 생뚱맞은데에서 주님의 천사를 보았다.
아니, 야웨가 짖굳게 영 좋지 않은 시간에 기드온을 찾아간 것이다. 
기드온은 그들의 생산물을 수탈하는 미디안 사람의 눈을 피해 밀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
아마 추수시점을 맞추어 곡식을 추수하면 이미 미디안의 손이 뻗칠 것이었기에
설익은 곡식을 타작하며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고,
나처럼 궁시렁거렸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야웨의 천사가 나타나서, "힘센장사야" 드립을 시전한다.
몰래 숨어서 타작을 하는데 저런 소리가 나면 심장 먼저 덜컹 가라앉는다.
'아 걸렸네. 좆됐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천사가 나타난 거다.
왠지 날개도 달리고 머리 위로 훌라우프를 달았는지 아닌지라기 보다는 어째 군신 분위기니깐
잘 차려입은 장군 스타일이랄까. 
암튼 천사는 내가 본 적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으니깐 일단 패스.
암튼 기드온은 분명히 빡쳤을꺼다. 
일단 깜짝 놀라 움찔 했을텐데 천사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약올린다.
"힘센장사야!" 라니. 이건 싸우자는 거다. 미디안을 피해서 타작하는 사람한테 '힘센 장사'라니.
야동 보는 친구한테 찾아가서 '순결한 친구야',
탈세로 구속된 기업인에게 찾아가서 '정직한 사람아'
라고 외치는 것과 별반 차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하신다"고 말한다.

기드온은 자신의 그룹이 당했던 수모를 기억한다.
미디안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들을 괴롭혔는지를 생각하고
정색하며 반문한다.

"어이, 웃기지도 않는 말씀을 하시는 구만. 어디 이민 다녀오셨수?
지금 내가 여기 몰래 타작하는 모습 안보입니까? 왜 이 설익은 곡식을 내가 먹어야 합니까?
아주 예전엔 홍해가 갈라졌었던지, 나일강이 피로 변했던지, 온 땅이 깜깜해졌던지가 뭐가 중요합니까?
현.시.창인거 안보이십니까? 야웨가 우리를 버려서 지금 미디안한테 이렇게 당하는 거 아닙니까?"

당돌하고 거친 응답앞에, 이젠 야웨가 직접 그에게 응답을 한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며, 명령이다.
기존의 상황 따윈, 또 과거의 원인 분석은 생략된다.
다만 현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체제에 대한 선포이다.
이미 "있는" 힘을 가지고 미디안을 물리치라는 것이 야웨의 말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역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이미 존재 한다는 힘에 대한 다른 생각이다.
현실적이며 냉철한 분석이다.

"나의 스펙이 구립니다."

이에 야웨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는 자신이 그와 함께 한다는 방법이다. 


다시 나의 이야기.
무언가 그렇게 쿵하고 얻어 맞은 듯 했지만 역시 삶은 그 모냥 그 꼴이다.
한참을 내가 무엇을 해야하며 이것을 왜 해야하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살다보니
아마 무서운 관성대로 원상황으로 복원되나보다.

성령강림주간이 끝나고 창조절이 되어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내가 몰래 이삭을 털다가 야웨의 천사를 보기전에 정신을 차리자.

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