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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Die Losungen

2012.09.10 (월)

나들목 도시락


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6:13-18)


 오늘 나들목 도시락에서 상당히 포인트가 될만한 질문을 던져줬다. 저 이야기가 나왔던 장소에 집중해 보라는 것. 베드로의 고백 구절은 공관복음에서 (막 8:27-30; 눅 9:18-21)에서 다 등장하나 누가복음에는 도시의 명칭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팍스 로마나'의 세계에 깊이 연관되어 살아 가던 사람들에게 이 메세지는 어쩌면 상당히 반체제적인 메세지이기에 의도적으로 누가가 장소에 대한 배제을 한 것이 아닌가한다.

  B.C.E 20년 아우구스투스, 아니 가이우스라는 양반은 헤롯대왕에게 바니야스라는 땅을 주고 헤롯 대왕은 가이우스를 기념해 흰 대리석 신전을 이곳에 세웠다. 헤롯대왕이 죽자 이 지역은 그의 아들 분봉왕 헤롯 빌립에게 주어지는데,  이 곳을 아릅답게 재건하여 북부지역의 수도로 삼고 이름을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로 명명한다. 여기에는 로마제국의 후견인 제도를 읽어볼 수 있는데, 도시의 이름이 말하는 대로 황제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 호슬리[각주:1]에 따르면 황제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착취 구조를 정당화 하는 원리로의 후견인 제도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예수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후견인 제도에 대한 전복을 말한 것인지, 복음서의 저자들은 아름다운 도시로 상징되는 후견인 제도와 예수와 베드로의 관계를 대비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베드로의 고백은 그만큼 위협적이다. 오직 황제만이 신의 아들로 불리우던 시기이다. 황제에게 바쳐진 그 도시, 본진에서 베드로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황제로부터 노예에 이르는 후견인 제도를 한방에 부수어 버린다. 이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는 선포로 정리되는 예수의 대답에서도 이어진다. 이 반석이 가톨릭의 해석대로 베드로인지, 혹은 개신교의 해석대로 고백의 내용인지도 뒤에 두자. 이 행동은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하며 '나는 아나키스트입니다' 라고 말하는 정도의 충격이 있는 구절이다. 새누리당 총수가 되어 '나는 빨갱이에 종북이오'를 말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내가 믿는 예수, 그리고 앞서 믿었던 베드로는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 자들이다. 이 새로운 후견인 제도의 중심에는 야웨가 있고 그 아래는 새 시대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손을 맞잡는 세계이다. 나는 그 일을 위해 어디에서 나의 진정성을 보일 것인가. 이젠 공부를 하자.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고 나가자.

  

  1. 정재웅, "후견인제도로 본 고린도 교회의 갈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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